예시예종(禮始禮終)의 유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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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묵 논설위원
기사입력 2015-05-19 [11:31]


▲임성묵 논설위원/본국검예 저자 © 무예신문

무인들은 하나 같이 수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예’를 취하고 수련을 마친 후 ‘예’로 마무리하는 것이 오랜 전통이 돼왔다. 이 유래는 ‘수련과정에 상호간에 지켜야할 예의를 바탕으로 한다’고 설명한다.

과연 ‘예시예종’의 문헌적 근거는 없을까? 바로 무예도보통지에 있다. 예도의 첫 시작은 ‘태아도타세’이다. 태아도타세의 검결의 의미는 󰡐하늘이시여! 적을 물리쳐 주소서’로서 마치 기도문의 주문과 같은 것이다.

예도를 모두 마치고 나면 여선참사세·양각조천세·금강보운세를 한다. 이 세 개의 검결은 실전에 사용하는 기법이 아니라 하늘에 천제를 드리는 예의 의식으로 취하는 기법이다. 여선참사세는 칼을 하늘에 세 번 던진다. 이것은 인간을 만든 한민족의 여신 여와의 신화와 연결된 검의 예술이다. 양각조천세는 양을 희생양으로 하늘에 제례를 드리며 올리는 검의 예술이다. 금강보운세는 하늘의 은덕으로 구름 위를 걸어도 꺼지기 않을 만큼 단단하게 됐다는 감사의 행위예술이다.

이처럼 조선세법은 천제와 연결된 제례행위와 연결됐고 조선세법의 검결은 한민족이 숭배한 신에 간절히 기도하는 제례의 시문(제문)을 담은 대서사시이다. 지구상에서 신이 없던 민족이 있었던가! 한민족은 신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잃어버린 신의 역사를 후손들은 신화라 폄하한다. 선조들에게 신화는 신 그 자체였다.

조선세법의 첫 시작은 거정세·평대세·퇴보군란이다. 이 세 개의 검결은 하늘에 나라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며 제사장이 천제를 드리는 내용이다. 거정세는 솥을 든다는 의미로 솥은 나라를 상징하며 평대세는 마니산 참성단처럼 바닥을 평평하게 쌓아 올린 제단이다. 제례를 드리기 위해 평평한 제단 옆에 다리가 세 개인 솥에서는 향이 피어오르는 모습이 연상되지 않는가. 퇴보군란이란 제사장 단군이 천제를 올리고 제례를 마친 후 뒷걸음으로 물러난다는 의미를 가진 검결이다.

이처럼 조선세법은 검법의 동작에 상징적 신화의 의미를 넣어 검결을 만든 것이다. 동양삼국에서 조선세법과 같은 심오한 내용의 검법은 없다. 조선세법의 검결은 검신일체의 의미를 가진 활인검인 것이다.

예시예종(禮始禮終)이란?
무예의 개념에 이미 ‘무’는 ‘예’로써 하늘에 기도로 시작하고 마지막에도 예로써 하늘에 감사의 기도로 마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조선세법의 검결은 예시예종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전통이 무예에 전승돼 예시예종의 개념이 남아있는 것 같다.

‘예’와 관련된 더 중요한 비밀은 본국검과 쌍수도의 지검대적세에 숨어있다. 쌍수도의 지검대적세와 본국검의 지검대적세는 그림도 다르고 자세도 다른데 이름은 같다.


 
‘발검’과 관련된 지검대적세에는 매우 중요한 비밀이 있다. 본국검의 지검대적세는 뒤(후)를 보고 있고 쌍수도의 지검대적세는 앞(전)을 보고 있다.

쌍수도의 첫 구절 負劍正立以左手持刀柄旋作見賊出劍勢進一步以劍從頭上一揮作持劍對賊勢(부검정립이좌수집도병선작견적출검세진일보이검종두상일휘작지검대젂세)에서 ‘負劍正立以左手持刀柄(좌수로 검 자루를 잡고 바로 서서 검을 좌측 어깨에 기댄다)’의 문장은 쌍수도의 지검대적세를 표현한 것이 아니다. 본국검의 지검대적세를 표현한 것이다.

본국검의 지검대적세의 문장은 初作持劍對賊勢雙手執柄倚左肩正立(초작지검대적세쌍수집병의좌견정립) 첫 시작의 지검대적세는 ‘쌍수로 검자루를 잡고 좌측 어깨에 기대어 바로 선다.’이다. 즉 쌍수도와 본국검은 서로 연결된 것이다. 이렇게 기록한 것은 쌍수도와 본국검의 ‘검로’의 좌우 방향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려는 것이다.

지검대적세는 세 가지 중요한 비밀을 품고 있다. 첫 번째는 검법의 방향을 정해주는 나침판의 역할을 한다. 즉 좌측 시선의 방향이 전방향이고 우측 시선의 방향은 후방향을 나타낸다. 방향을 정함에 있어 전후의 방향보다 좌우의 방향이 더 중요하다. 좌우방향만 맞으면 전후 방향은 바뀌어도 동작은 같기 때문이다. 좌우의 방향이 정해지려면 전후의 방향이 정해져야 한다. 쌍수도나 본국검은 후 방향을 보고 좌우의 방향이 정해진 것이다. 이것을 해독하지 못하면 좌우방향이 바뀌어 검법을 행하기 때문에 신법 수법 보법이 달라진다. 두 번째는 ‘예’의 기능이 있다. 본국검과 쌍수도는 무과 시험에서 왕 앞에서 시연을 한다. 그러므로 돌아서서 자세를 잡고 마음을 다스린 후 옷매무시도 단정히 하는 예법이 들어있다. 뒤를 보고 지검대적세를 취한 연후에 몸을 돌려 견적출검세를 하고 다시 지검대적세를 취하는 것이다. 후 방향의 지검대적세와 전 방향의 지검대적세 사이에 견적출검세가 있는 것이다. 쌍수도의 ‘見賊出劍勢進一步以劍從頭上一揮作持劍對賊勢’문장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견적출검세 이후 곧바로 지검대적세를 하는 것이 간결하나 칼을 들어 한번 돌리는 것은 조선세법의 태아도타세와 같이 하늘에 기운을 받겠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사진검에 쓰여진 일편용광두우사(一片龍光斗牛射)란 문장도 검을 하늘의 곧게 들어 견우와 직녀의 신에게 한줄기 서광의 빛을 받아 적을 물리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발검의 과정에 ‘예’를 고하는 행위적 표현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쌍수도와 본국검은 이처럼 후 방향에서 예를 갖춘 후 시작을 했기에 후 방향을 기준으로 좌우방향을 정했다. 조선세법은 좌측 시선이 후 방향을 나타내고 우측 시선이 전방향이 된다. 이렇게 되면 조선세법의 좌우방향과 본국검의 좌우방향은 반대가 된다. 즉 조선세법은 등지지 않고 앞을 보고 시작을 한다. 대부분의 단체들이 지검대적세의 비밀을 해독하지 못했기 때문에 본국검을 재현하면서 좌우 방향을 잘못돼 보법·수법·신법이 달라지 게 된 것이다. 조선세법은 제사장·왕·장수 등 최고의 지휘자가 행하던 검법이다. 그러하기에 당당히 앞서서 지휘하는 위치에서 행했다. 조선세법은 천제를 드리는 검신일체의 검법으로 행하는 사람은 신을 대리하는 자로써 몸을 등질 하등의 이유가 없다. 본국검과 쌍수도는 장졸들이 수련하는 것이었다면 조선세법은 왕과 제사장 등이 수련하고 천제를 드릴 때 사용하던 검예의 검법이었다. 조선세법이야 말로 ‘예’의 정수인 것이다. 세 번째 기능은 검법의 비밀을 감추는 것이다. 본국검·쌍수도·조선세법의 기록과 그림을 해독하기 어려운 것은 검법의 비서가 유출되더라도 쉽게 해독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실제 조선세법이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 건너가 모원의에 의해 무비지에 기록돼 많은 무예가들이 보았지만 조선세법을 해독하지는 못하였다. 그 증거가 아직까지 조선세법의 동작이 원문과 일치돼 설명된 적이 없으며 조선세법의 전체 동작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무예는 과거에 매우 중요한 국가의 비밀이며 가전의 비전이었기에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지 않았다. 그 상징 속에 감춰진 비밀을 찾는 것은 어려운 과정이다. 무인들에 의해 금 쪽 같이 지켜온 ‘예시예종’의 개념은 본국검·쌍수도·조선세법 속에 고스란히 남아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 위 내용은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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