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정체성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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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묵 논설위원
기사입력 2014-12-26 [14:14]


▲임성묵 논설위원/본국검예 저자© 무예신문

藝(예)자는 한민족의 정체성이 함축된 글자다. 예의 갑골문과 금문을 보면 여자가 무릎을 꿇고 나무를 들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 글자가 여성이 나무를 심는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문화를 모르는 중국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의도가 어찌 되었건 처음의 해석을 뒷사람들은 의심 없이 인용하게 된다.

중국이 발굴된 유물을 봉쇄하는 것은 자국에 불리한 것은 숨기고 자국에 유리하게 유물을 해석하여 발표하려는 의도다. 한번 규정시키면 그것을 뒤집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후속 연구에서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반대로 맞는다는 것을 입증해야한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느 누가 평생을 바쳐 싸울 것인가. 대부분 하다하다 지쳐 포기하게 된다. 새로운 증거가 드러나기 전 까지 최초의 해석은 유효하게 된다. 학계는 싫든 좋든 이것을 재인용하게 된다. 이것이 학술적 역사왜곡의 방법이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유물조차 우리의 사학자들이 중국의 해석에 부합하여 해석하려한다. 더 가관인 것은 서양의 사례까지 비교하여 해석을 해 놓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자신의 유식을 자랑하기 위해 사족을 붙인 것이다. 그러면 순진한 후학들은 그 개념을 맹신하여 우리의 문화를 말살하는 앞잡이가 된다. 우리와 관련된 유물은 우리의 기록과 우리의 시각에서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중국사서의 기록들이 왜곡되었다는 것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예’자는 한민족의 정체성과 관련된 글자다. 여성이 신에게 의례의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은허 무관총에서 발굴된 사모무정의 금문에 예자의 모습이 있음이 예사롭지 않다. 청동 솥에 기록된 사모무정의 그림들은 신성한 나무 밑에 여성이 무릎을 꿇고 있다. 상고의 금문은 대개 한민족의 신화와 조상에 관한 기록들이다. 중국의 금문학자 낙빈기는 금문신고를 통해 사마천이 사기에 쓴 삼황오제의 신화는 고조선의 단군 신농이 실존의 역사를 금문에 기록한 것을 밝혀냈다. 우리에게는 눈이 번쩍 뛸 내용이다.  사학계는 이러한 엄청난 발표에도 아직 조용하기만 하다. 지금 낙빈기의 금문신고는 잠을 자고 있다.
 
단군신화에 신단수가 나온다. 나무를 타고 신이 내려온다. 한민족이 나무를 신성시 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마을 어귀 정자나무는 신이다. 무당들이 신대를 통해 신이 강신한 것을 느끼고 보는 이도 강신됨을 예측한다. 나무가 흔들림은 바람의 작용이다. 바람이 신이다. 바람에 비는 것이 ‘바라다’의 ‘바람’이다. 바람은 선과 풍류의 근원이다. 샤머니즘은 여성이 주신이다. 모계시대의 여신이 여전히 계승된 것이다. 우리말 ‘모신다.’는 ‘모신’을 숭배하던 말이 존경어로 계승된 것이다.
 
제례와 관련된 것도 예의 음가를 가진다. 禮(예)자도 제례에서 신에게 올리는 제물이다. 제례의 행위에는 일정한 법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정한 法(법)이 필요한 것은 법은 예에 이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말대답에 ‘예’를 사용하는 것도 예의 종교가 생활언어에 스며든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은 달리 나온 말이 아니다. 무예도보통지에 ‘예’를 쓴 것도 그렇다. 이처럼 글자 한자 한자가 한중일의 정체성을 구분해주고 있다.

중국은 法(법)자를 사용하여 검법, 서법, 차법이라 하고. 일본을 道(도)자를 사용여 검도, 서도, 다도라 한다. 이에 반해 우리 한민족은 정체성과 깊은 관련이 있는 글자는 藝(예)자를 추구했던 민족이다. 해방 후 일제가 정착시킨‘서도’라는 명칭을 소전 손재형 선생님께서 각고의 노력으로 지금은 남북이 모두 ‘서예’로 쓰고 있다. 다도 계에서도 지금 다례로 바꾸는 운동이 일고 있다. 이처럼 정체성이 들어있는 글자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검도를  ‘검예’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검도는 외래무술로 이미 무예진흥법에 분류되어 있다. 언젠가는 ‘검예’가 서예처럼 검도를 반드시 몰아낼 것이다.

藝(예)와 勢(세)도 같은 ‘埶(재주예/형세/기세)’의 상형성을 가진 글자다. 조선세법의 검결에 모두 勢(세)자가 쓰임은 이처럼 매우 중요한 철학적 의미가 들어있다. ‘氣(기)’가 상하의 작용이라면 ‘결’은 좌우수평작용이다. 조선세법에서 洗(씻을세)와 勢(기세 세)를 쓴 것은 조선세법의 동작이 물의 흐름과 같기 때문이다.

물결은 태을반공의 모습으로 위아래로 골이 생기면서 나간 듯 물러나고 물러난 듯 나아간다. 물이 모이면 힘이 드러난다. 이것이 ‘勢(세)’이다. 드러나지 않던 ‘기’가 점차 쌓여 마침내 드러나면 ‘기세’가 된다. 조선세법을 익히려면 이처럼 ‘세’를 얻고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조선세법의 연결동작은 이처럼 ‘세’를 통해 ‘예’에 이르는 심오한 철학이 들어있다. 예에 이르는 예의 속에는 법과 술이 내재한다. 예는 신과 소통하는 의식이다. 조선세법은 검의 기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천제를 검신일체하여 하늘에 올리는 검의 제례이다. 그래서 조선세법은 조선선법이기도 하다. ‘洗’자가 ‘선’의 음가를 내포한 이유다.

한민족은 ‘藝(예)’자에 문화의 정체성을 압축하여 넣었다. 이제 우리가 예의 상징성을 알고 사용하여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 위 내용은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무예신문 (http://mooy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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