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사범, 대를 이어 가업을 잇다

오노균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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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효 기자
기사입력 2014-09-01 [16:18]


▲오노균 박사© 무예신문

처음으로 간판을 건 ‘오현도장’. 이곳의 이름은 처음 태권도를 수련한 곳과 관련이 있다. 나는 도장 이름에 내 뿌리를 잊지 말자는 각오를 다졌다. 고려시대 때부터 보성 오씨 집성촌인 청원 현도면의 의미를 담아, 오씨와 현도의 첫 자를 따서 지었다. 이곳은 현재 아들 오현군이 2대 관장으로 태권도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현군은 북한학을 전공한 국제협력단원으로, 라오스 시엠쾅주에 파견돼 한-라 원조 지원사업을 수립해 첫 태권도장을 세웠다.

이 즈음, 나는 태권도의 국제적 위상과 종주국의 명예를 선양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스포츠외교를 배우기 위해 미국 스포츠아카데미에서 스포츠경영학을 공부하고 사우스웨스턴대학에서는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1997년, 충청대학교 스포츠외교학과의 창설과 함께 김운용 당시 IOC위원 겸 세계태권도연맹 총재를 명예교수로 추대해 본격적인 태권도 외교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지난 1998년, 나는 세계태권도문화축제와 코리아오픈국제태권도대회를 창설하고 세계태권도연맹의 공식 대회로 승인 받았다. 이 축제는 종주국의 태권도 축제를 넘어 2001한국방문의해에는 우리나라 8대 메이저 축제로 선정됐다. 참으로 감개무량했다.

총 61개국에서 3천명의 외국수련생과 지도자들이 참가했고, 미2사단 장병 3백여명이 참여한 개막식 태권도시범은 한-미 친선의 스포츠외교 한마당이었다. 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축제가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기까지, 수많은 선후배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축제의 성공적 개최 유공자로 선정돼 난타와 함께 대한민국 관광대상 창의부문을 수상했다.

스포츠외교의 한축을 남북 태권도 교류에 두고, 2000년 6.15 공동 선언 이후 국제태권도연맹 최홍희 총재를 중국 연변에서 8월에 만났다. 태권도시범단을 연변으로 초청, 나는 남북 태권도 공동 시범과 백두산 통일 등반을 함께하는 등 태권도 협력 무드를 만들어 갔다.

이듬해 캐나다 토론토에서 최 총재의 초청으로 남북태권도교류협력 지원방안을 협의하고 정부에 의견을 개진했다. 스포츠외교의 중요성을 실감했던 만큼, 2002년 5월에는 평양 태권도전당에서 남북 학자 간 체육 교류를 최초로 성사시켰다. 이때부터 장웅 북측 IOC위원(현 국제태권도연맹 총재)과도 교분을 쌓아 나갔다.

평양을 방문할 때 추억으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에게 평화통일을 상징하는 김유신 장군의 보검인 천룡검 복제품을 제작해 선물했다. 이 검은 묘향산 국제친선교류센터에 지금까지 보관돼 있다. 그 당시, 묘향산 계곡에서 북측 안내원들과 함께 통일의 노래도 부르며 함께한 천렵은 지금도 아련한 추억이다.

 
나는 스포츠 외교와 더불어, 지역에서의 활동을 이어갔다. 대전광역시태권도협회장에 선출돼 6,7대 회장을 역임했다. 이 기간 시 지원금을 자체 확보해 태권도시범단을 창설하고, 유성구청 실업팀을 창단해 지방태권도의 진흥과 활성화를 꾀했다.

전국 최초의 ‘대전학생안전지원단’을 태권도관장을 중심으로 위촉, 행정안전부의 수범사례로 선택돼 전국으로 보급하는 선례도 만들었다.

이후 정치에 입문해 국민중심당 공천으로 5기 민선 대덕구청장에 출마했다. 하지만 정치경험의 미숙과 열악한 당세 등으로 낙선 했다. 선거에 출마해 낙선의 아픔은 내게 성숙함을 갖게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우리나라 중흥의 산실이었던 새마을운동을 계승하는 대전광역시 새마을회장으로 선출돼, 비영리단체 최대 조직인 새마을운동조직을 이끌어 나갔다.  <계속>
 
 
무예신문 (http://mooy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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