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무도편] 고구려부터 고려까지 승군(僧軍)으로 인한…

승려들은 동공을 평소 연마해왔기에 국가위기시 승군으로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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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굴사 설적운 주지
기사입력 2012-12-31 [15:59]

▲ 선무도 총본산 골굴사(주지 설적운)
 “국가의 안위를 위해 승려들이 자진해서 조직한 군대(승군)에 대한 기록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의 역사소설 속에 꽤 많이 등장한다.”

밀교의 고승들이 기기묘묘한 신통술을 구사한 것은 차지하더라도 승려들 개개인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련이나 선무도에서 말하는 무술적인 동공(動功)을 평소에 연마해 왔기 때문에 유사시에 승군(僧軍)으로 출전이 가능했을 것이란 짐작을 뛰어넘은 역사적 사실이 조선말기 갑오경장(1894)때 승군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수없이 기록되어 왔다. 세기를 초월한 호국 불교 정신은 선무도와 함께 그 맥을 영원히 이어갈 것이다.

국가의 안위를 위해 승려들이 자진해서 조직한 군대(승군)에 대한 기록은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중국의 역사소설 속에 꽤 많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때부터 승군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으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승군 편에 따르면 ‘승군(僧軍)은 나라의 위난을 구하기 위하여 승려들이 조직한 군대’라고 정의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때 처음으로 승군이 생겨났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때부터 승군의 활동을 살필 수 있다.

수나라의 백만 대군이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 을지문덕은 살수의 강물을 막아 적병으로 하여금 강을 건너오도록 유도하였으나 그들이 믿지 않았다. 이때 가사(架娑)를 입은 7명의 승려가 나타나서 발을 걷고 강을 건넜으므로 적병들이 속아서 강을 건너게 되어 살수대첩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신라의 승려 도옥(道玉)은 백제가 조천성(助川城)을 공격했을 때 결사대를 조직하여 적진에 들어가서 기습공격을 하여 신라군에게 승리의 계기를 만들어준 뒤 전사하였다.
백제의 도침(道琛)은 나라가 망하자 복신(福信)등과 함께 백제부흥운동에 힘쓰는 한편 임존성(任存城)을 중심으로 패잔병을 재조직하였고, 신라 및 당나라 군사와 싸워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으나 복신이 보낸 자객에 의해서 살해되었다.

또한 통일신라 말기의 난세에는 해인사에서 승군을 조직하여 난도(亂徒)들의 공격으로부터 사찰의 식량과 재산을 자체적으로 방위하였다. 고려시대에도 국가에 위난이 있을 때에는 승려들이 승군을 조직하여 전투에 참여하였다.

1010년(현종 1)에 거란의 침략으로 서경이 위기에 놓였을 때 승장 법언(法言)은 사정(思政)등과 함께 9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임원역(林原驛)에 진을 치고 거란병을 공격하여 적병 수천명을 살상하는 큰 전과를 올렸으나 법언은 순국하였다.

고려에서 승군에 관하여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1104년(숙종 9)에 항마군(降魔軍)이라는 명칭으로 정규군에 편입된 때부터이다. 그 뒤 어려운 상황이 있을 때마다 승군을 차출하게 되었다.

1216년(고종 3) 8월에 거란이 우리나라 서북쪽 국경을 침범하자 조정에서 군대를 파견하여 적을 막게 하였는데, 이때 승군 수백 명이 참가하였다.

특히 몽고의 침략 때에는 김윤후(金允侯)의 활약이 뛰어났다. 원나라가 살례탑(撒禮塔)을 도원수로 삼아 2차 침략을 하여 처인성을 공격하였을 때 승려였던 김윤후는 활을 쏘아 살례탑을 죽였고, 원나라가 4차 침략을 하였을 때에는 충주산성 방호병감(傍護兵監)이 되어 70여일 동안 산성을 수호하여 적군을 물러가게 하였으며, 1254년의 제5차 침략 때에도 충주성의 함락을 막았다. 이 5차 침략 때 상주산성을 지키고 있던 승장 홍지(洪之)는 백발백중의 실력으로 적의 지휘관을 사살하고 사기를 꺾었으며, 여러 차례의 공방전으로 적의 병력 반 이상을 살상하여 적을 물리쳤는데, 이 5차 침략 때 함락되지 않은 성은 충주성과 상주성 뿐이었다.

고려 후기에는 승군의 세력이 매우 강성하였다. 1359년(공민왕 8년) 12월에 홍건적의 침입이 있게 되자 선교 양종의 승려들이 참여하여 이들을 막았고 전국의 사찰에 있던 말을 군용으로 보충시켰다.

1377년(우왕 3년)에 화통도감(火通都監)을 세우고 화약제조술을 중국에서 도입하였을 때, 1급의 비밀에 속한 기술 요원은 승군에서 충당하였고, 화통을 쏘는 포군(砲軍)은 서울과 각 지방의 사찰에 인원수를 할당하여 조직하였다.

1378년 3월에는 대마도의 왜구와 강화도 인근의 왜구가 개경의 함락을 목적으로 대거 침략하게 되자 조정에서는 경상도와 양광도에서 1000인의 승군과 교주, 서해, 평안도에서 각 500인의 승군을 차출하여 병선을 제조하고 화약병기를 사용하여 적을 물리치게 하였으며, 1388년 4월에는 승군들이 왜구의 침략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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