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견사 탐구] 항일 독립운동과 택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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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무예연구가
기사입력 2019-06-26 [17:52]

▲ 前 서울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 연구원, 무예연구가 김영만  ©무예신문

이보형(1984)은 ‘無形文化財傳受實態調査 택견’에서 일인을 제압한 김경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군 송포면 대화리 뱀개마을에 유명한 택견꾼이 많아서 애오개 택견꾼들과 겨루었다 하는데 金烱云은 택견의 神技를 지녔다. 서울 장안에 갔다가 어떤 韓國人 하나가 日人 세사람에게 모듬매를 맞는 것을 보고 의협심이 강한 그는 달려들어 발길질 서너번에 日人 셋을 눈깜짝할 사이에 거꾸려뜨리고 말았다 한다. 그는 그뒤로 韓國人을 괴롭히는 日人巡査들이 밤낮으로 잡으로 왔기 때문에 숨어서 살았다 한다. 日人들이 몇차례 체포하려 들었으나 번개와 같은 그를 잡을 길이 없었다 한다. 日人들이 택견을 禁한 것도 택견꾼 가운데 人士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보형(前 문화재위원)의 인터뷰(2015.8.7. 노원)에서 김경운은 어깨를 밟고 다니면서 일본순사들을 무찔렸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경향신문(1974. 12. 30, 칼럼/논단) ‘바둑야화(357) 제58화 기인 김영식(1893년생)’의 제하로 “김영식 노인은 젊었을 때 태껸을 했다고 한다. 그가 일지기 항일청년운동을 할 때에 삼각산 밑에서 지나가는 일본 무장 기마경찰을 날아가면서 발로 차서 마하(말 아래)로 떨어뜨린 경력이 있다는 것. 좌우간 83세의 노인인 그가 태껸시범을 보이면 구경하는 젊은 청년들이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그는 몸이 날쌔었다.”

 

고용우(송덕기 택견명인에게 1969년~1985년 가르침을 받음)의 인터뷰(2015.9.20., LA)에서 독립운동과 택견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진술하였다.

 

1996년 11월경에 LA에 맥도날드 옆 그랜드 스위트 호텔 옥상에서 대한택견에서 택견 시범을 보이는 자리에서 박 선생님을 처음 만났는데 그때 80대 후반이었죠. 이남석 사범님이랑 옆에 앉아계시는데 어떤 분이 택견을 하셨다는 거야. 내가 태껸수련장할 때 나를 좋아해가지고 한 달에 2번은 세리토스에서 내려오셨지, 붓글씨를 잘 쓰시고 그때 수신연무라고 걸려 있는 게 그때 썼던 거지, 어려서 택견하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본인은 흉내만 내봤다고... 그런데 사촌형님이 명동에서 사업을 하셨는데 택견의 고수였다고 그랬어요. 박 선생님이 당시 중학생이었을 때 만주에 독립운동하려 가기 전에 후미진 곳에 저녁에 서너 명씩 모여서 택견을 배워서 갔다고 하더라고요. 

 

만주 독립운동을 위해서 출국 전에 택견을 배우는 것은 마치 요즈음 군대에 가기 전에 태권도를 배우는 것과 같은 현상과도 같다.

 

이병한(송덕기 택견명인에게 1984년~1985년 1년 6개월 가르침을 받음)의 인터뷰(2015.11.07., 원주)에서 “할아버지(송덕기)는 일제 강점기 유도하는 사람이 택견 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맞고 갔다라고 했어요.” 라는 진술로 미루어 볼 때 경기화 된 유도는 살수(殺手)인 택견에 비해 그 실전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독립군들은 유도가 아닌 택견을 선호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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