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견사 탐구] 항일 독립운동과 택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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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무예연구가
기사입력 2019-06-03 [16:09]

▲ 前 서울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 연구원, 무예연구가 김영만 ©무예신문

한편 박영효, 서재필과 관련이 있는 이규완도 택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규완(李圭完, 1862~ 1946)은 “뚝섬 나무장사의 아들로 태여낫지만 어려서부터도 膽氣차기로 일흠이 잇섯스며 京城名物의 택견(脚蹴)의 명선수인 勇少年이엿섯다. 그리다가 엇지 엇지하야 朴泳孝의 집 청직이로 드러가게 된 것이 그가 출세한 새닥다리의 첫 층계이엿다.”(김진구, 1923.06.23.).

 

이규완은 택견의 명인이었으며 몸놀림이 빠르고 성격이 성실해서 박영효(朴泳孝, 1861~1939)의 호신인 노릇을 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1883년(고종 20년) 5월 이규완은 서재필 등과 함께 게이오 의숙(慶應義塾)에 입학하여 학문을 배웠다. 이때 서재필은 정규 교과과정 이외에 조선인 동기생들로부터 무예를 배웠다. 택견의 명수 이규완에게서는 택견의 고난도 품새를, 유도와 씨름에 능한 임은명에게서는 조르기, 누르기 등 유술(柔術) 전반에 대해 배웠다.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69권에 보이는 소화 17년(1942.11.2.) 작성된 박도병 신문조서(제6회)에서는 당우체육회와 관련된 ‘택견부장 박춘병’이 두 차례에 걸쳐 언급되고 있다. 송도건(松島健) 외 4명에 대한 치안유지법 위반 피의사건에 대하여 원산경찰서 堂下경찰관주재소에서 작성된 신문조서이다.

 

국사편찬위원회(2015.10.27.)에 질의한 결과 朴春秉의 직함은 박도병 신문조서(6회)에는 ‘脚戱部長’으로, 그리고 증인 김해진호 신문조서에는 ‘脚技部長’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들 ‘脚戱’와 ‘脚技’를 국사편찬위원회 해당 책자에서는 모두 ‘택견’으로 번역하였으며 이들 자료를 번역한 한학자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쳤고 일본어 초서를 지도하는 선생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어서 그들의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 하였다.

 

송정에 사는 한학자 송호 홍종범(松湖 洪鍾凡, 1905~1991년)은 옥람 한일동이 중년에 독립군에 가담해 독립운동을 했고 출타할 때마다 가산(논밭)을 팔아 갔는데, 그 돈을 만주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독립군의 군자금으로 조달했으며 오랜 객지생활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증언했다(홍구보, 2004.9.18. 강원일보; 2004.02.02).

 

옥람 한일동의 외아들인 한천우씨의 증언에 의하면 `새벽녘에 마당에서 아버님이 운동할 때 옆에 서 있으면 찬바람이 일 정도였다'고 말했다. 제자 최홍희(崔泓熙, 1918~2002년)도 `나는 어려서 체질이 허약했는데 스승님이 매일 새벽 뒷산에 데리고 가, 택견의 기본기를 가르쳐 기운이 살아났다'고 증언했다. 최홍희와의 인연은 함경도 길주에 잠시 머물 때 처음 만났다. 옥람이 고향으로 돌아가자 부곡까지 찾아와 서예와 택견을 배웠다(홍구보, 2014.09.18.).

 

또한 최홍희는 그의 저서 ‘태권도와 나’에서 “(한일동) 선생은 또한 주로 발만 쓰는 택견 무술에 조예가 깊으신 분으로 아버님 못지않게 나의 약질을 염려해 틈이 날 때마다 무용담을 들려주며 담력을 키워주고, 원시적이긴 했지만 택견의 초보적인 기술도 몸소 가르쳐 주었다(최홍희, 1997)고 술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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