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견사 탐구] 항일 독립운동과 택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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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무예연구가
기사입력 2019-05-21 [09:45]

▲ 前 서울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 연구원, 무예연구가 김영만   ©무예신문

항일 독립운동과 택견의 관계를 조명을 위하여 먼저 일제강점기의 전후의 사전에 나타난 택견의 의미를 살펴보면, 일제강점기 문세영(1938)의 《조선어 사전》에 “[태껸] 발길로 맞은편 사람의 다리를 차서 넘어 떠리는 유희”로 기록하고, 이전 조선총독부(1920)에서 출간한 《조선어사전(朝鮮語辭典)》에서도 뜻풀이를 같이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전후 ‘택견’의 사전적 의미는 이전에 ‘손발 기술을 사용하는 무예적 개념’위주로 기록하고 있으나 이후에는 ‘발기술을 이용한 유희’로 기록하고 있다. 이 현상은 일인(日人)들에 의한 ‘택견의 놀이화’의 작업으로 인한 결과라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 최근까지 택견이 ‘발차기 놀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하지만 실제 택견경기를 소개한 동아일보(1928.7.3)의 ‘仁川武道盛況’기사에서 인천무도관창립 1주년 기념 무도대회에 택견 권충일과 권투 나주연이 결승에서 장쾌하게 겨루었다는 기사가 있다. 이 경기를 통해서 택견과 권투의 상관성을 유추케 한다.

항일 독립운동가 중 택견을 수련한 인물을 살펴보면 김구, 서재필, 박춘병, 한일동 등이 있으며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백범김구전집 3권(1999)의 ‘치하포사건과 관련 자료’의 원문에서 「海州居 金昌洙 年二一 初招」, 1896.8.31.(奎章閣 no. 26048, 『報告書』에 김창수의 신문에서 “以足으로 推蹵ᄒᆞ야 顛사後 以手로 打殺ᄒᆞ야 投之江氷ᄒᆞ엿스며…”. 李花甫의 심문에서 “金昌洙가 日人을 拘執亂打하여 打殺.” 再招 심문에서 김창수는 “初以石打, 更以木擊, 도망가는 것을 따라가 以木連打.”이화보는 “흉기는 어두워서 판별할 수 없었음.” 김창수의 三招에서 “발로 차 마당에 쓰러뜨리니 칼을 뽑길래, 돌로 쳐 넘어뜨리고 칼을 빼앗음.”로 기록하고 있다.

 

이용복(1990)은 ‘택견의 고수 김구’의 부제에서 김구(1983)의 백범일지 마당문고사의 내용을 인용하여, 칼을 든 일인을 발길로 제압한 대목에 대해서 택견의 익혔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홍원식(2000)도 백범 김구(金九)를 택견의 고수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고유(2008)의 《서재필 광야에 서다》에서 1948년 9월 11일 조선호텔 아침 김구가 서재필을 찾아와서 나눈 문답에서 서재필 問“ 백범이 청년시절에 왜놈을 차서 거꾸러뜨린 것 말이오. 그이야기를 듣고 백범이 태껸의 달인이라고 여겼는데, 언제 수련하셨소?”백범 答“고유무예여서 틈틈이 익혔습니다. 아하, 내 짐작이 맞군. 나도 소년시절부터 태껸에 푹 빠졌다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일인의 칼을 발로차서 넘길 수 있는 실력이라면 대단한 무예의 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당시 택견이 일인들을 제압하는 수단 등으로 보아 고유와 이용복 그리고 홍원식의 ‘택견의 고수 김구’ 내용에 신빙성이 높다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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