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견사 탐구] 택견의 고수 왈자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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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무예연구가
기사입력 2019-03-22 [18:07]

▲ 前 서울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 연구원, 무예연구가 김영만     ©무예신문

서울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행정운영상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던 관속층, 소위 왈자들은 유흥문화가 발달할수록 패악과 범죄가 심해졌으며 검계와도 연관을 맺고 있다. 검계 이외에도 유사집단인 살략계(殺掠契), 홍동계(鬨動契), 살주계(殺主契) 등의 폭력조직이 나타나는데 마치 유흥가에 파리가 꼬이듯 모여들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모두 살인을 서슴지 않는 폭력 조직 배들이다.

 

《남원고사(南原古詞)》(19세기)에 왈자와 한량이 함께 등장하는데, 춘향이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왈자들이 찾아가는 부분이다. 그들이 찾아가는 이유는 기생과 기부의 역학관계여서 춘향이를 보호하기 위함인데 비록 춘향이가 기생은 아닐지언정 그런 부류로 치부하여 서울 왈자들의 입장에서 응당해야할 시위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은 옥 앞에서 씨름과 택견을 하는 등 무법천지로 일종의 시위를 벌인다. 그것은 서울 왈자들로서 “기생이 수금(囚禁- 옥에 갇히면)하면 우리네가 출입이 응당”이라는 발언에서 기생과 왈자가 밀착된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대부분 왈자가 그런 경향을 지녔지만 그나마 긍정적인 이미지를 지닌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추재기이(秋齋紀異)에 실린 강대사람 김오흥이 있지만 강대사람들의 기질은 말보다 힘이 앞서고 난폭하지만 협기를 숭상하는 풍기를 지녔고 경아전을 중심으로 하는 우대주민들은 가난했지만, 의리와 협기가 있어 임협 노릇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김오흥은 용력이 절륜하여 읍청루(서울 마포 쪽 훈련도감 별영에 속했던 유명한 누대) 처마에 올라가서 기왓골에 발을 걸고서 거꾸로 가기도 했으며 제비나 참새처럼 민첩했다고 한다(강명관, 2004).

 

이들이 택견을 행했다는 기록은 흔치 않지만 택견 이외의 다른 무예를 짐작하기는 힘들다.

 

왈자들이 택견과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은 다음 몇 가지 기록으로 미루어서도 추정이 가능하다. 왈자들과 기생 그리고 유흥업 그리고 도박은 불가분의 관계이다(강명관, 2004). 최영년의 《해동죽지》(1921) 가운데 탁견희 조에서 “이것으로 원수도 갚고 혹은 사랑하는 여자를 내기하여 빼앗기도 했다. 법관으로부터 금함을 당하였기 때문에 지금은 이런 장난이 없다. 이것을 ‘탁견’이라고 한다.” “미인을 두고 다투는 것도 풍류아의 기질/단번에 초선을 빼앗으면 의기가 양양하다.”

 

그리고 민속학자 이능화(1869~1943)가 일제강점기에 발간한 기생과 관련한 책 《조선해어화사》(1926)에 “우리나라 풍속에는 미동(美童)이 하나 있으면 여러 사람이 질투하여 서로 차지하려고 장소를 정하여 각법(脚法), 속칭 택기연으로 자웅을 겨뤄 이긴 자가 미동을 차지한다. 조선조 철종 말년부터 고종 초까지 대단히 성했으나 오늘날에는 볼 수 없다.” 라는 대목은 전형적인 왈자이거나 이와 유사한 무리로서 왈자의 세계와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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