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견사 탐구] 택견에 관한 외국인의 기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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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무예연구가
기사입력 2019-02-01 [15:45]

▲ 前 서울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 연구원, 무예연구가 김영만  ©무예신문

조선말 우리나라를 방문한 구미(歐美)의 외국인은 선교사, 외교관 그리고 호기심 많은 여행가 혹은 식민주의나 제국주의의 위세를 배경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 등 다양한 목적을 지녔는데 그들 중 일부는 우리나라의 이국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우리나라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 여타 자료나 탐문을 통해 기록을 남긴 이들도 없지 않은데 대표적인 인물이 《한국천주교회사》를 집필한 Claude Charles Dallet(1829-1878)와 《은자의 나라 한국》을 저술하고 동경제국대학 교수를 역임한 바 있는 William E. Griffis(1843-1928)가 있다.

 

이들의 기록 가운데 적은 분량이지만 격투기에 관해 묘사된 부분들이 있다. 이 격투기와 관련된 부분은 정초에 발생하는 석전의 전초전인 경우가 적지 않으며 많은 경우 돈내기와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돈내기는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의 기질적 특성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델의 주도로 편찬한《한불자전(韓佛字典)》(1880)의 ‘택견하다’나 Stewart Culin(1858-1929)이 저술한 《동양의 게임》(1895) 가운데 ‘택견하기’ 항목에서 보이듯이 아이들의 놀이와 성인들의 격투기는 시기가 겹치고 있다. 당시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성인들에게서 행해졌던 돈내기와 관련된 격투기는 전문무예인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또한 이 내용을 기록한 필자들의 주 활동무대가 서울이었음을 감안할 때 택견인 것으로 확인된다. 캐나다인 선교사 제임스 게일이 《한불뎐》과 언더우드의 《한영뎐》등을 참고로 1897년에 편찬한 《한영뎐》에는 ‘택견하다’ 항목에는 아이들의 놀이라는 표현이 빠져있다.

 

이들 사전류는 조선에 오래 거주한 이들에 의해 정성을 들여 만들어졌으며 서울에서는 그런 책을 인쇄할 방법이 없었기에 1880년 요코하마의 ‘Echo du Japan(일본의 소리)’라는 잡지를 간행하고 있던 레비인쇄소에서 인쇄하게 된다. 이후에 만들어졌던 《한영뎐》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사전류를 제외하고는 구체적으로 택견이라는 단어가 표현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조선을 방문한 그들의 주 활동무대가 서울이었으며 석전과 관련된 내용들이 적지 않기에 택견으로 추측하는 것이다. 여기에 나타나는 동작들을 유추해보면 과격해지면 특정한 규정이 없이 성인들의 손과 발 심지어 무릎까지 사용하는 종합격투기의 형태로 현재의 택견경기와 괴리가 없지 않다. 그 내용들도 생경한 그들의 눈에 비친 모습을 가감 없이 담아 기록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현장감이 살아있다.

 

※무예신문에 실린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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