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견사 탐구] 택견과 유술(柔術)의 관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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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무예연구가
기사입력 2019-01-28 [16:18]

▲  前 서울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 연구원, 무예연구가 김영만  ©무예신문

국내 유도는 1906년 우치다 요헤이[內田良平]에 의해서 일본 강도관 유도가 소개되었는데 이에 대해 일본의 잡지인 《柔道》(小田省吾, 1918: 31)에 지금이 명동에 16평 정도의 도장을 개설해 2, 30명이 연습을 했는데 주로 일본인에 의해서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손환, 정승삼, 2000).

 

실제로 일본의 강도관 유도 도입시기는 1906~1910년 사이(이학래, 1990)이므로 도입되자마자 성행하였을 리도 만무하고 강도관 유도는 일본 내에서조차도 1911년에 일본 중학교에 “체조의 격검(검술) 유술은 부과할 수 있음(수의과)”이라 하여 유술이란 이름으로 정식과목으로 채택된다.

 

강도관 한진희(1924, 개벽 제49호) 사범에 의하면 근대화 된 강도관 유도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실시된 것은 1909년 중앙 기독교청년회 내에서였다.

 

또한 한진희(1924년 7월 1일) 개벽 제49호의‘兄弟들아 武力修養에 힘을 쓰 必要는 업슬가’에서 제하에서 15년 전에 나수영, 유근수에 의해 시작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잘 운영이 되지 아니하여 김상익, 박재영, 강낙원, 한진희로 이어졌는데 크게 환영을 받지 못하여 사퇴를 반복한 것이다.

 

이 기사는 실제로는 대한매일신보(1910년 6월 17일)의 ‘靑會演說’ 기사에 유근수에 의해 격검과 유술반이 열린다고 언급되어 있으며, 같은 내용이 황성신문(1910년 6월 17일). ‘靑館擊劒과 演說’에서도 소개되고 있어 정확한 년도는 1910년으로 보인다. 아마도 국내 유도 유입시기가 1909년이라는 설은 한진희가 1924년에 언급한 ‘15년 전’에 의해 소급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론을 낳게 한다.

 

나수영이 일본인 사범에게서 받아가지고 온 유도 비법의 책 이름도 《천풍해세류》였다. 즉 당시 대부분 인식하고 있는 유술은 그 이전까지 사용하지 않던 생소한 용어자체 때문에 일본 무술에서 즐겨 쓰던 용어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하는 것이지 도입연도나 정황상 택견이라는 언문 표기를 당시 식자층에서도 입에 담을 수 있게 유술로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아이들의 놀이<청구영언(靑丘永言)>(1728)이기도 했고 왈패들 사이에서 성행<남원고사(南原古祠)>(1864~1869)하거나 하급군인들에게서 성행하던 하찮게 취급되던 택견이 일본문화를 통해 재발견되고 가치를 인정받은 계기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의 유도가 국내에 도입되었지만 국내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지도자들이 줄줄이 사퇴하는 터에 항일독립운동을 위해 건립된 신흥무관학교의 체육과정에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것이어서 이전의 택견이 유술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된 것이라 사료된다.

 

현재 재정립된 택견에서는 흔하지는 않지만 과거 송덕기 옹의 택견에는 수많은 태질과 관절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자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송덕기 옹에게서 택견을 배운 이들을 찾아다니며 구술채록과 그 기술을 습득하는 가운데 밝혀진 내용이기도 하다.

 

송덕기의 기술에는 신주, 풍수 등으로 불리는 관절기(꺾기) 뿐 아니라 수많은 유도기술 그리고 씨름기술이 태질로 포함되어 있는데 현대화된 기술과는 달리 급소를 직접 공격하는 타격기술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당시 식자층에서 바라 볼 때 유술이라는 표현이 결코 낯선 표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특히 유술의 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이는 안자산이다. 하나 일제강점기 후반으로 갈수록 일제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국내에서의 당초 이미지와는 달리 거의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 정희준(鄭熙俊)에 의해 저술된 《조선고어사전》(1948)에서는 탁견: 이조 중엽 이후에 있던 씨름과 비슷하던 유술(柔術)의 한 가지라는 기록 등이 남아 있다.

 

1907년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光武軍)가 해산되고 이들은 각지로 흩어지면서 국내에서는 의병으로, 국외 미국과 멕시코로 이민을 가게 되는데 그들은 이역만리에서도 택견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무예신문에 실린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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