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견사 탐구] 택견 용어의 이칭(異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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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무예연구가
기사입력 2018-12-27 [15:14]

▲  前 서울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 연구원, 무예연구가 김영만  ©무예신문

택견이 이칭(異稱)에 대해서 조선의 마지막 국가무형문화재 제76호 택견기능보유자 송덕기(1893~1987)로부터 1969년~1985년까지 택견을 사사(師事)받고, 특히 1983년부터 집중적으로 2년간 이준서(前, 송덕기의 윗대택견 국가전수장학생)와 함께 사사받은 고용우(1952년 1월 13일生, 미국 로스앤젤레스 거주)에 대해서 태견(김정윤, 2003)은 “송덕기는 고용우가 가장 태견을 마음에 들게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구술채록(2013년 2월 1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커피숍)에서 택견의 이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할아버지, 태껸의 다른 말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하니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박양박수’, ‘박양서각’이라고 하지, 말했어요. ‘박양박수’는 손을 쓰는 기술을 의미하고 ‘박양서각’은 다리를 쓰는 것으로 이야기 했어요. 그러니까, 수박과 태껸이 같다는 의미예요. 그리고 할아버지는 택견이나 탁견이라고 하지 않고 태껸이라고 했어요.

 

 

언어학적 관점에서 상기한 내용을 살펴보면, 언문표기인 택견에 비해 모두 한자표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각기는 ‘ㄱ’받침이 탈락이 되고 뒷음절인 ‘기’가 경음화 되는 현상인지 혹은 단순히 각희의 사투리화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어린아이들의 놀이 일종인 ‘까기’와 음운상 유사성을 보인다.

 

독립운동가 안자산(1886~1946, 서울출생)의 <조선무사영웅전>(1919), 정희준의 <조선고어사전>(1948) 등에서 ‘유술(柔術)’이 임진왜란 또는 임진난리 뒤에 조선 것이 일본에 유전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1880~1936)는 <조선상고사>(1948)에 수박이 지나(支那)에 들어가 권법이 되고 일본에 건너가 유도가 되었다고 기록하는 것으로 보아서, 유술(유도)이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역수입되는 경로에 따라 우리나라에 보급된 것이라 사료된다. 이와 관련된 주장은 매일신보(1921년 8월 20일) 기사(古代日鮮和親의 實史, 文學博士 三上參次)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조선무사영웅전>(1919)과 <조서고어사전>(1948)에 유술(택견)을 ‘수박, 수박희, 권법, 권박, 각저, 각희, 상박, 씨름 따위 이름으로 불리더니, 이후 기술의 발달로 이허(裡許)가 다르게 유술과 씨름으로 분류되었다.’ 택견이 조선시대 종합격투기에서 분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일제강점기 사전류에서 발길질 위주로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화된 스포츠에서 발 위주(태권도, 축구 등)와 손 위주(복싱, 배구 등) 그리고 유술기(레슬링, 유도 등) 등으로 분화된 현상과 같은 맥락이라 사료된다. 택견의 명칭이 통시적 흐름에 따라 수박, 수박희, 박나, 각희, 유술, 박양박수, 박양서각 등 다양한 명칭의 변화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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