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수도_05] 한국의 전통무예, 축국과 격구에서 익힌 발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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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도 총재
기사입력 2017-06-20 [13:16]

▲ 국제당수도연맹 남인도 총재 (무예신문)
발차기는 우리나라 전통무예에서 주요 술기로 꼽힌다. 손으로 치는 것보다 3∼4배 큰 충격을 준다. 효과적인 발기술 연마 방법으로는 축국, 격구, 보타구가 있다.

동남아시아에는 15세기에 탄생한 '세팍타크로'라는 경기가 있다. 발로 공을 차서 네트 너머 상대편 구역으로 넘기면 점수를 얻는다. 족구와 비슷하다. 세팍타크로를 즐기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는 실랏, 태국에서는 무예타이와 같이 발놀림이 뛰어난 무예가 발전했다. 공을 차면서 발차기 연습을 하다보면 무예를 배울 때 발기술 익힘이 쉽다.

우리나라에도 무예에 필요한 발기술을 연마할 수 있는 놀이가 있었다. 축국과 격구다. 축국은 털로 만든 둥근 공이나 소, 돼지의 방광에 바람을 넣은 공기공을 발로 차는 놀이다. 고대 중국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전해졌다.

신라 시대 김유신과 김춘추도 축국을 즐겼다. ‘김유신이 찬 공에 김춘추의 옷고름이 떨어졌고 김유신이 김춘추를 자기 집에 데려가 여동생 문희에게 옷고름을 달아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나온다.

축국에는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오래 차는 제기차기형태, 국역(國域)이라 불린 경기장 양 끝에 구멍 6개를 파 놓고 공을 차 넣는 구멍차기 형태, 공문을 만들어 차 넣는 오늘날 축구와 비슷한 형태가 있었다.

고려 시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공기가 가득 차서 공이 되었을 땐, 사람에게 한 번 채여 하늘 높이 올랐네. 공기가 빠지자 사람 역시 내버리니, 쭈그러져 하나의 빈 주머니가 되었구려’라는 시를 썼다.

고려 사람들은 돼지방광이나 태(胎)에 바람을 넣어 공을 높이 차는 제기차기형태의 공놀이를 즐겼다. 조선시대에는 엽전을 넣어 만든 제기가 등장했다. 공을 쉽게 구할 수 없던 상황에서 쉽게 찰 수 있는 제기가 등장한 것이다.

19세기 중반 조선시대 풍습을 전하는 <동국세시기>에는 ’젊은이들이 축국놀이를 한다. 공은 큰 탄환만 하고, 꿩깃을 꽂았다. 두 사람이 마주 서서 서로 받아 차는데 발로 잘 받아서 땅에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잘 차는 기술이다‘라고 나와 있다.

제기차기는 혼자서도 발 기술을 연마할 수 있는 놀이다. 전통무예 술기 중 발기술이 많은 것은 거의 모든 어린이가 제기차기 등을 하면서 발기술을 무의식중에 익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공놀이에는 축국 외에 격구와 보타구가 있다. 격구는 말을 타고 공을 치는 놀이로 서양의 폴로(Polo)와 유사하다. 보타구는 걸으면서 공을 치는 필드하키와 닮았다. 격구가 황실과 귀족에게 성행한 반면, 보타구는 말과 넓은 구장이 없는 평민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격구는 페르시아에서 시작해 당나라 또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고구려로 전해졌다. 발해시대에 크게 유행했다. 발해 3대 문왕의 딸인 정효공주의 무덤 벽화에는 격구 채를 든 사람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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